매거진
2022.02.10
[장사준비]
세컨드원 더플레이트
김도형 셰프님
허기를 달래고자 식당에 간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면 허기 이상의 것을 달랜 기분이다. 그러다 문득 사장님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누군가와 함께거나 혼자일 때도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나의 허기를 달래줬으니까. 그 이상의 것을 충족시켜줬으니까.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장사에 임하는지, 첫 손님을 맞이하기 전에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변함없는 맛을 손님에게 전하는 사장님은 묵묵히 자신만의 준비를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만을 가지고 사장님을 찾았다.
세 번째로 향한 곳은 광주에 위치한 '세컨드원 더플레이트'.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저 건물이 내가 가게 될 곳임을 눈치챘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나올법한 웅장한 건물을 따라 홀리듯 입장했고, 그곳에는 미쉐린 가이드에 4년 연속 등재된 김도형 셰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미쉐린 가이드 선정 방식에 대해 논할 때,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의 맛을 평가할 때,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요리하는지 궁금했다. 요리를 언제부터 좋아했냐는 식상한 질문부터 이탈리안 요리를 하면 한식이 당기지 않냐는 질문까지. 할 수 있는 질문을 한 아름 안고서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김도형 셰프님.
세컨드원 더플레이트는 어떤 곳인가요?
세컨드원이라는 복합공간에서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입니다. 광주에서 한국식 이탈리아 요리가 아닌, 이탈리아 현지 그대로의 맛을 전하고 싶었어요. 소스, 드레싱을 포함한 모든 음식은 제가 아는 선에서 이태리 전통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좋은 음식이란 신선한 재료, 깨끗한 환경 그리고 좋은 마음 가짐과 정성이다’라고 매장 철학이 적혀 있던데요. 계기가 있을까요?
저처럼 음식을 만드는 셰프는 똑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만든 음식을 내 가족 혹은 가까운 지인이 즐겁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신선하지 않은 재료로, 더러운 공간에서, 나쁜 마음가짐으로 만든 음식이라면 절대 대접할 수 없다는 뜻이죠. 저만의 거창한 철학이 아닌 요리사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해요.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메뉴판에도 적어둔 거랍니다.
주방에서의 업무 분담이 궁금해요.
출근을 하고서 각자 맡은 파트의 준비를 해요. 샐러드 파트, 파스타 파트, 메인 파트 등 각 파트 별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이것 이외에도 모두의 힘을 모아 공통적으로 준비하는 것들도 있고요.
소스마다 끓이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 아세요? 라구 소스는 하루종일 끓여야 하지만 토마토 소스는 1시간 안으로 끝내야 해요. 토마토는 산미와 단맛을 같이 가지고 있는 열매인데, 오래 끓이면 산미가 없어져요. 단맛만 나거나 아예 맛이 없게 돼요. 무(無)맛이요. 무 맛. 반대로 라구 소스는 야채와 고기의 맛이 어우러져서 깊은 맛을 내야 하기 때문에 사골처럼 오래 끓이는 게 좋아요.
고기 한 덩이가 나가는데 최소 이틀이 걸려요. 먼저 고기의 지방이나 근막, 껍질을 제거합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종이에 감싸 형태를 잡아요. 핏물을 빼는 과정이기도 해요. 로즈마리, 올리브유를 넣어 진공상태로 포장한 뒤, 냉장고에 숙성합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숙성이 끝나면 저온의 수조에 6시간 이상 넣어둬요. 이걸 수비드라고 해요. 수조 속 고기를 꺼내, 먹기 좋은 상태로 소분하여 다시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냉장고 속 차가운 고기를 바로 굽지 않아요. 다시 저온 수저 안에 넣어 온도를 높인 뒤 비로소 조리를 시작합니다.
수비드로 조리하는 이유가 있나요?
수비드는 밀봉된 고기를 저온 수조에 넣어 천천히 가열하는 조리법이에요. 셰프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부드러운 게 특징인 수비드 방식을 택했어요. 수비드 방식 없이 조리하는 셰프도 있어요. 수비드 스테이크를 싫어하시는 손님도 있고요. 이것 또한 셰프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해요.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냐는 기획자 즉, 셰프의 선택이에요.
"누가 맞고 틀리냐가 아니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사회학과를 졸업하셨더라고요. 요즘은 학과와 무관한 직종을 선택한 경우가 많은데 셰프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사회학과를 졸업해서 삼성그룹에 들어가 마케팅 일을 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사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게 붙은 거죠. 아마 꼴찌로 붙었을 거예요. 2년 반 정도 다니다가 요리를 하겠다고 퇴사를 했어요.
술을 좋아하기도 해서 칵테일이나 와인을 파는 120평의 바를 차렸는데, 2년 만에 쫄땅 망해서 집의 원수가 되었죠. 이때 돈을 갚기까지 10년이 걸렸네요.
사회학과를 졸업하여 마케팅 직군으로, 이후 CJ 요식업 계열사의 개발 팀장까지. 생각지도 못한 이력이네요. 언제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어요. 전공은 사회학이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요리관련 자격증까지 공부했거든요. 졸업 후, 마케팅 직군의 일을 하면서도 계속 요리가 하고 싶었어요. 그 당시에 신입사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제 꿈은 요리하는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꿈을 이뤘습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안 음식인 이유가 있을까요?
이탈리안 음식은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요. 그래서 더 어려웠죠. 다른 나라의 요리는 잘 모르지만 서양의 다른 요리보다 이탈리안 음식은 재료에 집중해요.
재료에서 맛을 끌어내는 방식이 좋아요. 생 토마토를 먹으면 단맛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새콤달콤한 맛도 있고, 다양한 맛이 존재하잖아요. 토마토 소스도 마찬가지로 생 토마토와 같은 비율의 맛이 느껴져야 해요. 이탈리아에 가보면 생 토마토를 먹었을 때처럼 어느정도 산미가 있는 것처럼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탈리아에서 맛본 음식을 최대한 비슷하게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거예요. 동양의 식재료로 만든 깻잎이나 김치 페스토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 현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이태리식 정통 까르보나라는 돼지볼살을 염장한 햄인 구안챨레와 후추, 계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혹은 빼꼬리노 치즈를 이용해 만들어요. 저는 최대한 이태리 정통 방식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요리를 계속하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손님이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을 때, 그 빈 접시를 치우면서 힘이 나죠. 가끔 빈 접시가 보이면 사진도 찍어요. (휴대폰을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SNS에 올린 적도 있어요. 음식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것 이상의 보람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식당에 단순히 맛만 즐기러 오지 않을 거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우리 음식을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 떠오르는,
좋은 사람과 같이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었으면 해요."
오너셰프뿐만 아니라, '프레임 쿠치나'라는 뇨끼 보드 브랜드 런칭을 하셨더라고요. 곧 셰프님의 이름으로 밀키트가 출시된다는 것도 들었어요. 대체 이런 힘은 어디서 나는 거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안전장치를 만드는 거예요. 주방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수익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점점 요리사는 살아남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요. 인건비가 오르고, 사람 구하기는 쉽지 않으니 식당들이 작은 규모의 오너 셰프 체제로 바뀌고 있어요. 현재 저희 매장은 서빙로봇 딜리가 직원들의 수고로움을 덜고 있고요.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오너 셰프 외에 부캐릭터를 만들고 있어요.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요.
무엇을 해야만 결과물이 나와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냥 하는 거죠."
인터뷰가 끝나고 나의 팬심을 전했다. 셰프님은 내게 점심 식사를 함께하자고 권했고, 술을 좋아한다던 셰프님은 와인 한 잔 어떠냐고 물었다. 마음속으론 'YES!'를 외치고 있었는데, 선뜻 튀어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와중에 와인 한 잔이 나왔고, 셰프님은 식전 빵을 손으로 찢은 뒤 와인을 음미했다. 나는 나이프를 내려놓고 셰프님을 따라 식전 빵을 맨손으로 집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대학생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사회학과 학생이었는데 그 당시 사회학과를 주축으로 시위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자신은 요리학원을 가기 위해 교정을 빠져나가기 바빴는데, 가방에 있는 식칼 때문에 잡히는 일이 많았다고. 사회학과가 무슨 요리냐는 물음에 셰프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학과라고 해서 요리를 배우면 안 되는 법이 있냐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딘가 모르게 씩씩함이 보였는데, 셰프님의 씩씩함은 수십 년간 쌓아올려진 생각에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