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2.02.13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과 행당역 사이에는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정작 식당을 보기는 힘들다. 밥을 한끼하려고 근처를 살피던 중 한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로봇이 서빙을 해준대. 우리 들어가보자.” 인근에 딜리를 사용하는 가게가 있나 싶어 아이가 가리키고 있는 쪽을 보니 순댓국 전문점 ‘신의주찹쌀순대 금호점’이었다.


중앙에는 널찍하고 아늑한 부스가, 양 옆에는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었으며 바닥에는 이국적 패턴의 타일이 깔려 있었다. 순댓국 전문점이라기 보다 카페에 더 가까워 보였다. 혼자서 순댓국을 먹고 싶어도 가기가 주저됐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충분히 혼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와, 저기 진짜 로봇이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앞서 들어온 아이가 딜리의 움직임을 생중계했다. 열 살 남짓 되어 보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로봇이 서빙해주면 혼자서 1인분 다 먹는다고 했어. 약속 꼭 지켜~” 라고 이야기했다.

국밥을 하나 시킨 후 아이의 동향을 살폈다. “온다, 온다, 온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반찬을 빼곡히 실은 쟁반을 들고 이동하는 딜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의 어머니가 쟁반을 내려 받은 후 딜리의 요청에 따라 ‘확인’ 버튼을 눌러 돌려보냈다. 아이는 “고마워”라고 딜리의 뒤통수에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직원이 팔팔 끓고 있는 순댓국을 들고 나타나자 아이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치 빠른 직원이 순댓국을 들고 다시 주방 쪽으로 돌아간 후 센스있게 딜리에 실어 보냈다.

아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순대국의 맛을 알아갈 때쯤 반찬과 순댓국이 차례로 나왔다. 이번에도 반찬은 딜리가, 순대국은 직원이 가져다줬다.
그 이유를 조심스럽게 묻자, 아무래도 순대국이 많이 뜨거우니 손님이 직접 내리다가 혹시나 다칠까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순대국만큼은 직원들이 직접 내린다고 했다. 젊은 사장님은 석박지와 무생채, 쌈장을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며 꼭 맛보기를 권했다. 또 다른 집과 달리 머리고기를 직접 손질하여 육수를 내 잡내가 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증기와 함께 올라오는 냄새가 구수했다. 사골육수의 깊은 맛에 숟가락이 연신 움직였다. 찹쌀과 시래기 두 가지 맛의 순대 또한 속이 알차 씹는 재미가 있었다. 사장님의 말처럼 섞박지와 무생채가 집에서 담근 양 지나치게 달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시원했다. 집에서 담근 장처럼 거무스름한 빛깔의 쌈장은 맛이 깊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지만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으며, 그중 어린 아이와 엄마의 조합이 꽤 많았다. 순간, 딜리 덕에 이 동네 아이들은 순댓국 맛에 일찍 눈을 뜨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창업을 준비하며 시장조사 차 방문한 음식점에서 딜리의 존재를 알았다는 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딜리를 들일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연령대가 높은 직원들이 자유자재로 딜리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가게를 오픈 후 5개월동안 사용해보니 만족도가 높다는 사장님은 무엇보다 혼자 근무하는 날 딜리 덕을 톡톡해 본다고 했다.
“연휴 등 가끔 혼자 출근하는 날에는 딜리가 전적으로 홀을 책임지고 있어요”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지 않은 가게다. 혼자였으면 가게를 여는 일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을텐데 딜리가 있어 가게를 연중 열 수 있음에 만족스러워했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순댓국으로 든든하게 한끼를 해결하고 나오며 보니 아이는 여전히 식사 중이었다. 얼핏 들여다본 아이의 국과 밥그릇이 거의 다 비워져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오랜만에 투정 부리지 않고 스스로 잘 먹는 아이의 모습에 이미 배가 부른 눈치였다.
